설립취지
인송문학촌 토문재(吐文齋)를 해남 땅끝마을 바다가 보이는 송지면 송호리 땅끝해안로 1629-20번지에 신축했다. 해남 땅끝마을에 터를 잡은 인송문학촌 토문재는 30년 공직생활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박병두 작가가 사재를 들여 고향 해남에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만든 창작공간이다. 인송문학촌 토문재는 1,300평의 대지에 전통한옥 양식으로 지은 본관과 별관, 정자, 외삼문 등 3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토문재는 “글을 토해낸다”는 뜻이다. “글을 토해내는 작가”를 위해 만든 곳인 것이다. 입주작가를 선정하고 창작공간 등을 지원하는 형태는 기존 문화예술기관이 운영하는 레지던스와 비슷하지만 수익 창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예술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 시설을 공공이 아닌 민간이 운영·관리하기에는 버겁지만 인송은 인문주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오늘에 이르렀다.
해남 황산면에서 출생하고 산이면에서 성장통을 겪는 인송은 신안, 경남 마산, 목포에서 유학했다. 공직생활 30년을 끝으로, 해남 백련재 문학의 집 1기 입주 작가로, 강원도 에버덩문학의 집과 제주도에서 창작활동을 유랑하며 성실한 글 밭을 이뤘다.
갈등과 충돌을 넘어 혐오의 시대, 인간성의 상실시대는 그에게 자꾸 작가로서의 책무를 되묻게 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인문정신을 되살려야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건강한 작가들이 많이 배출돼야 한다는 생각을 고민하고 있을 때 부친이 췌장암으로 소천하셨다. 부친의 惻隱之心(측은지심)과 易地思之(역지사지)의 마음들을 이어받아 도심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귀촌한 동기였다. 인송은 작가들이 맘껏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는 결심으로 창작공간을 만들기 위해 한옥건축 부지를 찾으려 해남 구석을 찾아다녔다.
지금의 토문재가 위치한 송지면 송종리는 인추산 혹은 달마산(멍중산)으로 불리고,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는 천혜의 경관과 배산임수를 두루 갖추고 있다. 토문재 뒷산을 1시간가량 걸으면 도솔암이 나오고, 땅끝마을도 인근에 있었다. 작가들의 창작공간, 한옥을 송정, 이춘수 명장과 인연으로 기념비적인 전통 한옥을 신축 완공할 수가 있었다.
인송문학촌 토문재는 낭독회와 작가초청 토크콘서트를 주‧월‧분기별 개최하고, 인문학 관련 강좌인 문학창작교실도 운영한다. 토문재에 머물 숱한 작가들의 문학적 영감은 땅끝 해남에서 시작될 것이고, 그와 관련된 글이 쏟아질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한 작가들의 글을 통해 땅끝 해남은 인문학과 문학의 명소로 떠오르고, 땅끝이 갈등과 충돌의 시대를 인문의 시대로 열어낼 것이란 희망도 키우고 있다.
박병두 작가의 아호는 인송(仁松)인데, ‘인(仁)’은 ‘사랑하다’, ‘친하게 지내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가엽게 여기거나, 애처롭거나 안타까워서 차마 하지 못하는 그런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송(松)’은 소나뭇과의 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만 굳은 지조나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방송작가 시절 그의 스승 만촌이 아호를 준 것인데 “착하고 어진, 변함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주신 아호다.
인송문학촌 토문재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창작공간이고, 유명한 작가보다 문단에서 소외된 작가나 장애인 작가 등의 창작산실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인송’이라는 아호가 작가의 정서와도 어울려 보인다.
이런 레지던스 공간을 마련한 또 다른 이유는 작가 자신이 그런 혜택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남군 ‘백련재 문학의 집’ 1기 입주작가로 입소해 대학의 학부시절 문창과 스승인 황지우 시인과 5개월 창작을 같이했고, 완도군에서 마련한 ‘윤선도 창작관’에 머물면서 그의 장편소설 “인동초” 시나리오를 각색했다. 작가는 “일상에서 이탈해 밖으로 나오니 정신이 가벼워지더라. 다른 작가도 마음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글을 쓰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편수 송정 선생의 기념비적인 인간애로 인송문학촌 토문재가 한반도 땅끝에 그렇게 자리잡은 것이다.
토문재를 구성하는 3개 동 중 본관에는 작가들과 주민들을 위한 다목적실 북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세미나실로 구성돼 있다.
혼자 유유자적 차를 마시며 해방감을 즐길 다락 차방도 있다. 본관에는 인송실, 하우실, 난초실이 창작공간이고, 별관은 송정실, 국화실, 목련실로 입주작가의 집필실이다. 인송이 유독 심혈을 기울인 정자 인송정(仁松亭)은 휴식공간과 작품낭독 공간이다.
조경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끝나면 전국의 새내기 부부가 시작될 야외결혼식장으로 무료 제공할 생각이다. 산과 바다 등 자연과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인송정이 작가들에게 영감을 줄 최적의 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0여 명이 앉아 토론회와 세미나를 열 수 있는 인송정은 인송문학촌 토문재에서 단연 압권이다. 인송정 앞에는 시원하게 열린 바다가 보이고, 파도의 너울을 바라보며 문학 낭독회와 시낭송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뒷산인 인추봉과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산책길과 송지 송호리에서 땅끝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송호리 해수욕장과 소나무 숲, 모래 해변은 작가들의 힐링공간이다.
본관 북카페는 작가들만의 공간을 넘어서 잠 못 이룬 사람들이 땅끝을 찾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커피 등 음료 제공과 함께 작품집, 계간 문예지, 인문학 서적, 중앙지 신문 등을 24시간 열람할 수 있게 꾸려져 있다.
집필실은 개인 작업공간이자 숙소로 사용된다. 이곳은 책상과 의자, 침대, 다과 찻상, 개인 화장실, 식재료 조리가 가능한 싱크대 등 넓고 쾌적하게 갖추고 있다. 입주작가에게는 모든 혜택이 무료로 제공된다. 자립하지 못한 예비 작가나 숨겨진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토문재의 건립 취지라 비용을 일체 받지 않는다.
토문재는 인문주의 정신의 공간으로 해남에서 랜드마크로 남겨질 것이라 지금보다는 더 멀리 상상하게 된다. 전국에서 발간된 문학 월간지 및 계간지를 논문자료처럼 활용하는 문학도서관과 가족도서관으로 인문학 작가들의 수련원이 인송문학촌 토문재 주변으로 건립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문학작가 연수원이 국내에는 단 한 곳도 없다. 해남에 작가 연수원이 생기면 토문재와 함께 한국문학의 미래를 여는 단추가 될 것”이라면서 “현재 해당 계획서를 관계기관에 제출한 상태”다.
작가 인송은 “물질적인 풍요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세상은 인문주의 정신과 인간성 회복이 시급하다”며, “인문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책무는 이러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작품을 통해 위로를 선사하는 것이다. 토문재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공간”이다.
귀촌 후 해남문화관광재단 이사로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더디고, 지역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 선한 의지로 고뇌하는 노력들이 있어 두 바퀴가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늘 변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회색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 자신은 조건과 이익을 위해 횐색, 검은색으로 편을 가리고, 진영과 이념대립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다. 인문학의 근간으로 옳고, 그름을 더 분간하고, 그른 일들을 옳게 바꿀 수 있는 그런 지성의 폭을 넓게 가져갔으면 좋겠다.
인송문학촌 토문재 전경은 어제도 오늘도 저녁노을과 더불어 밤하늘이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울림과 끌림으로 심장을 뛰게 한다. 진홍빛 노을, 별이 흐르는 밤하늘을 보면서 작가들의 맑은 영혼의 소리도 더 깊어질 것이다.
햇살 가득한 봄날, 사람 향기가 가득한 인송을 보러 안동에서 화폭을 챙겨 서둘러 인송문학촌 토문재에 향해 자동차 페달을 밟았다. 한 주간을 머물면서 토문재를 포함한 바다 전경 작품을 화폭에 담아냈다.
인송문학촌 토문재 전경 Ⓒ김대원
인송문학촌 토문재 정자 전경 Ⓒ김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