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창작공간 제공해 땅끝마을 ‘문화지수’ 높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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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10-18 20:26본문
박병두(58) 작가는 2년여 전 고향 해남으로 돌아왔다. 40여년 만의 귀향이었다. ‘시, 소설 쓰는 경찰관’이던 그는 앞서 2015년 공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됐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출신인 그는 최근 송지면 땅끝마을에 작가들에게 창작공간으로 내줄 한옥 ‘인송문학촌 토문재’를 열었다. ‘인송’(仁松)은 방송작가인 한 선배가 “어질고 변함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불러준 그의 아호이고, 토문재(吐文齋)는 “글을 토해내는 집”이라는 뜻이다. 작가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창작공간임을 고려한 작명인 셈이다.
지난달 27일 ‘제1기 입주작가’를 맞은 박 작가는 지난 1일 전화 인터뷰에서 “어려운 조건에서도 문학의 길을 외롭게 걷고 있는 분들을 첫 입주작가로 초대했다”고 말했다.
1985년 방송 시나리오 작가로 입문
1987년 순경 합격…1990년 시인 등단
‘글쓰는 경찰관’으로 활동 2015년 은퇴
40여년만에 귀향 ‘작가 레지던스’ 건립
최근 ‘인송문학촌 토문재’ 5명 첫 입주
“문단에서 소외된 작가들 창작터로”
인송문학촌은 땅끝마을 바다가 보이는 터에 자리를 잡았다. 4298㎡(1300평)의 터에 한옥으로 지어진 7개의 방 가운데 5개가 작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이다. 앞서 제1기 인송문학촌 작가 레지던스(거주시설) 입주자 공모엔 시인·소설가 127명이 응모했다. 황지우·오세영·이건청·이재무·손택수 시인이 참여하는 인송문학촌 운영위원회가 그 가운데 5명을 선발했다.
박 작가는 “땅끝에 있다는 상징성도 있고 한옥이어서인지 많은 작가가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 인송문학촌이 유명한 작가보다 문단에서 소외된 작가, 부부 작가나 장애인 작가 등의 창작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가 레지던스를 마련한 이유는, 그 또한 그런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2020년 5월부터 해남군 ‘백련재 문학의 집’과 완도군 ‘윤선도 문학관’에서 5개월가량씩 입주작가 공간에 머물렀던 박 작가는 “일상에서 이탈해 밖으로 나오니 정신이 가벼워지더라. 다른 작가들도 마음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글을 쓰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남과 완도에서 경험한 두 곳 모두 한옥이었기에 “한옥 맛을 보고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그는 땅끝마을에서 마땅한 터를 찾았다. “한옥을 지은 목수께서 작업을 하면서 ‘나무가 너무 좋다’고 맨손으로 ‘칼’(대패 등 도구)을 잡아 더 감동이었어요. 나도 덩달아 흙과 나무에 심취했죠.”
3~5개월 동안 머무를 수 있는 토문재 입주작가들의 방엔 텔레비전이 없다. 또 밥을 손수 지어 먹어야 한다. 방마다 조리시설을 별도로 두고 김치나 김 등 밑반찬과 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박 작가는 “작가 레지던스에서 살아보니 저녁이면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더라. 또 식당에서 서로 대면해 밥을 먹다 보니, 술을 마시게 되고 잡담도 길어지더라(웃음)”며 “(공용공간인) 북카페에만 텔레비전을 뒀다”고 설명했다. 북카페엔 “작가들이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군 단위 지역신문부터 지방지와 전국지 등을 고루 비치했다.
박 작가는 1985년 <한국방송>(KBS) ‘티브이문학관’에 <행려자>라는 극본이 뽑혀 글 쓰는 길로 들어섰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잘 쓰면 형님이 영화관에 데려갔다. 영화관에 가고 싶어 일기를 빼먹지 않고 썼다”고 말했다. 1987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그는 1990년 <문학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 < 해남가는 길> 외 3권, 수필집 <흔들려도 당신은 꽃> 외 4권, 장편소설 < 그림자 밟기> <인동초> 등 3권을 집필한 박 작가는 이육사문학상, 전태일문학상, 고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늦깎이로 한신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공부한 뒤 아주대에서 석사학위(국문학)를, 원광대에서 박사학위(경찰학)를 받았다. 경찰대학 전문상담관, 중앙경찰학교 교수요원, 경기경찰청 정훈관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