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두의 시선]진돗개와 해남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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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10-18 20:14본문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절실한 문제라면 이별이다. 우리는 가족, 친구, 연인, 직장동료 등 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산다. 충견으로 알려진 진돗개를 유년시절부터 동경했지만 얼마 전 나는 이별 아닌 이별을 했다. 우리가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알고, 주인의 기쁨과 슬픔을 잘 읽고 공감해 주기 때문이다.
공직생활 첫발을 내딛으면서 원룸공간에서 진도견과 지내다가 얼마가지 못하고 떠나보낸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이후 30년이 훌쩍 지났다. 사람을 가까이서 겪어봐야 알지 겉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차이가 얼마나 우매한 일인지 지인 한옥명장님 통해 체득했었다. 도심지에 한옥가(家)마당에 진돗개를 기르셨다. 얼마 후 어미에게서 강아지가 들어섰고, 주인을 닮은 진돗개가 건강하게 여섯 마리를 순산했다.
명장은 단아하고 소박하며 늘 사유하는 성품에 금도를 지키시는 시대의 큰 어른이셨다. 어미진돗개는 흑구로 용맹스러움과 동물이지만 인간미까지 났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모습이었다. 어미를 닮은 강아지들은 착하고 귀여웠다. 흑구는 사랑하는 조카 사돈댁으로, 황구는 시골집으로, 백구는 시나리오 집필중인 창작촌으로 데려왔다. 삼십년 전 원룸에서 기르던 강아지와 십일간 지냈던 생각을 재생하며, 숙고를 걸쳐 백구와 지내는 데는 나름 자신감이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며,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고민을 하며, 진솔하고 정직한 신뢰로 봉사하는 보람과 긍지도 있었지만 인문학 기대와는 달리 피로감이 엄습했던 탓에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들이 찾아드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감정의 교류를 갖지 못하는 소통이란 부재를 겪는 현실에서 말없는 눈빛과 표정으로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진돗개의 모습은 인간보다 나은 모습을 얻었다.
자신이 어둠 속에 있으면 상대방은 자기를 알아보기 어려운 법이다. 어쩌면 알아보기 어려워야만 안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더로 서는 순간, 들어 낼 수밖에 없다. 카리스마를 공감으로 연결되려면 능력과 실력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굳은 신념이 있어야 에너지로 뿜어낼 수 있다. 사회현실은 잘났다고 보이는 순간 안전망을 뚫고, 도전과 견제를 받기 마련이다. 인간관계에서 겪는 완벽함은 그래서 있을 수 없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절망과 사람에 대한 실망은 고독으로 이어졌다. 겸손을 뒤집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우선이다. 시(詩)도, 인생도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감각들을 선한의지와 말없는 강아지 백구을 통해 거는 희망은 막연한 나의 이기심으로 또 이별을 겪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깊은 슬픔이 내는 울음소리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내재한 불안감으로 백구는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 꼬리를 흔들며, 몸과 혀로 사랑을 표현했지만, 백구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었던 나는 조카 사돈에게 의탁했다.
해남詩人과 가족이 염려했던 것은 나에 대한 어떤 실험정신과 같았을 것이다. 백구와 이별소식은 곡진한 슬픔이 되고 말았다. 인간인 나로서는 완벽하게 판단하고 지킬 수 있는 강아지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백구시(詩) 한 편을 썼지만 시에는 성찰도, 삶도 안보이고, 언어만 보여, 버리고 말았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성향인지, 그리고 어떤 취향으로 살았는지, 지금의 감정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의 눈보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을 더 중시하는 것이 행복일진데 그 행복이란 삶의 주거지는 현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귀촌을 꿈꾸면서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순박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정 깊게 사랑을 교류할 수 있을까. 산과 나무가 아니더라도 보람을 얻을 수 있을까? 잠시지만 모든 걸 멈추고 생명력을 회상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밤이 하늘이면서 약이 되는 날이 되려면 성숙이 더 필요한 시간이다. 사소하고 하찮은 사물도, 동물도, 인간처럼 영혼이 있고, 심지어 은밀하게 말을 건넨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지금의 시간은 현재진행형이다.